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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일본’ - 신조어로 세계 제패한 재팬

운영자 2017-09-11 (월) 04:18 7개월전 456  
일본의 가전제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어콘(エアコン), 파소콘(パソコン), 리모콘(リモコン). 모두 ‘콘’으로 끝나는 4글자 외래어다. 같은 ‘콘’ 발음이지만 뜻은 모두 다르다.

우리도 사용하는 단어인 에어콘은 말 그대로 에어(공기) 컨디셔너(조절장치)에서 따온 단어다. 파소콘은 ‘퍼스널 컴퓨터’의 약어이고, 리모콘은 우리도 사용하는 리모콘 원격 조절장치를 뜻하는 ‘리모트 컨트롤러’의 준말이다.

일본에는 이 밖에도 수많은 ‘콘’ 단어가 있다. 건설업체를 의미하는 제네콘(ゼネコン·General Contractor)부터 스파콘(スパコン·슈퍼컴퓨터), 마자콘(マザコン·mother complex), 로리콘(ロリコン·롤리타 컴플렉스·소아성애), 보디콘(ボディコン·body-conscious·신체 곡선을 강조한 타이트한 원피스)까지 유난히 ‘콘’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다.

이들 단어의 특징은 가타카나(カタカナ·외래어나 외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사용하는 외래어, 혹은 외래어를 일본어 표현으로 줄인 것들이다. 4글자 단어라는 것, 그리고 2개 이상의 외국어(영어)를 조합했지만 결코 외국인은 알아들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가라오케(カラオケ)’와 ‘워크맨(ウォークマン)’이다. 두 단어는 수 십 년 전 일본이 전세계에 수출한 대표적인 문화이자 신조어다. 워크맨은 소니가 1979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다. 지금은 비록 MD플레이어·MP3 등에 밀려 단종됐지만, 출시 당시 워크맨은 ‘음악은 실내에서 듣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전세계 시장을 제패했다.

그 결과 walk와 man을 합친 쟁글리시(Janglish·일본식 영어) 조어(造語)임에도 불구하고 ‘워크맨’은 옥스퍼드 사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의 노래방에서 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라오케’는 가라(空·비어있는 혹은 가짜)라는 일본어와 오케스트라라는 영어단어를 교묘하게 결합한 단어다.

이들 신조어에는 영어가 많이 쓰이는데, 가만 보면 일본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외국어(특히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 respect(존경)나 supplement(영양보조식품)·negle c t(육아방기)·release(발표)·doner(장기제공자, 자금지원국) 등은 일본어 단어가 있는데도 영어가 정착한 단어들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가 “사람들 앞에서 가타카나를 줄줄이 나열하면서 잘난 체 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고 개탄한 것이 100년 전 일이다. 당시에도 일본인들은 외국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를 일본식 표현으로 재탄생 시키는 재주도 뛰어났다.

엄밀히 따지면 한자 역시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정작 유럽과 미국에서 도입된 다양한 개념들을 한자어로 만들어낸 이들은 일본인이다. 일본인들은 사회와 역사·전통·문화가 전혀 다른 지역에서 태생한 개념들을 한자어로 바꾸고, 이를 정착시켰을 뿐 아니라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 등 주변국으로 확산시켰다.

한자어는 무조건 중국에서 전해져 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인(個人)·사회(社会)·국가(国家)·국민(国民)·세계(世界)·세기(世紀)·해방(開放)·자본(資本)·사회주의(社会主義)·합리(合理) 같은 단어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외래어 활용한 신조어 가장 많아

어쩌면 일본인들은 신조어를 가장 잘 만들어내는 ‘언어의 귀재’일지 모른다. 콘비니(Convinience Store·편의점)·시부카지(渋谷+casual·시부야 거리에 어울리는 캐주얼 복장)·기무타쿠(木村拓哉·유명 가수겸 배우인 기무라 타쿠야) 같은 준말은 비교적 예측하기 쉬운 단어들이다.

비교적 짧은 단어인 맥도날드·스타벅스도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막쿠(マック·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지역에서 사용)·마쿠도(マクド·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역)’, ‘스타바(スタバ)’로 각각 모양을 바꾼다. 한글표기로는 각각 네 글자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일본어 표기를 하면 마쿠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수타-박쿠스(スターバックス)처럼 확실히 글자수가 늘어난다.

문장이나 단어가 길어지면 쓰기도, 읽기도 힘들어지는 법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일본어에서는 단어의 한 부분을 생략하거나 줄이는 약어가 많다. 외래어가 아니더라도 가정용가전제품을 의미하는 가덴(家電)이나 휴대전화의 앞 두 글자만을 딴 게-타이(携帯)가 일상적으로 쓰인다. 여기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주로 네 문자(음절)로 줄이는 경우가 많다.

세 음절이나 다섯 음절보다 안정감이 있고 말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한자 4자성어에 친숙한 것도 네 문자 조어가 많은 요인 중 하나다. 백화점이라는 뜻의 데파-토멘토·스토아(department store)처럼 긴 단어는 당연히 데파토(デパート)로 모습을 바꾼 지 오래다. 그렇다면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부를까?

정답은 ‘데파치카(デパチカ)’다. 데파-토와 치카(地下)를 결합한 조어다. 쇼-에네(省エネ·에너지절약)나 메루토모(メル友·메일과 친구를 결합한 메일을 주고받는 친구), 한국사회에도 정착한 ‘프로야구’ 모두 영어와 일본어가 절반씩 결합한 단어들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때로는 기업이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들기도 하고, 개그맨들이 만든 유행어가 될 때도 있다. 일본의 언어평론가인 가메이 하지메(亀井肇)에 따르면 한 달에도 수십 개씩 생겨나는 신조어지만, 이 중 2%만이 사회에 정착하고 사전에 등재된다. 나머지 98%는 잠시 유행어로 주목을 받다가 잊혀진다는 것이다. 또 경기가 좋을 때 신조어가 많이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고, 기업들의 신제품 개발, 해외제품 유입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미혼의 전문직여성(골드 미스)이 주요 소비층으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여성과 관련된 신조어가 많아진 것도 최근 트렌드다. 30세 전후의 여성이라는 뜻의 ‘아라사-(アラサー·around thirty)’가 대표적이다. 아라사-는 2005년 창간한 여성잡지 <지젤>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처음엔 의류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 세대 여성은 90년대 중반 고갸루 문화를 체험한 세대로, 독특한 유행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아라사-에서 파생한 아라포-(アラフォー·around forty)는 말 그대로 40대 전후 여성들을 뜻한다. 2008년 방영된 TV드라마 <아라포->는 40대 전후 여성들의 일과 결혼, 출산을 주제로 엮은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라포-는 그 해 가장 인기를 얻은 신조어로 꼽혔다.

그렇다고 일본 사회에서 이들 신조어나 외래어가 반드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2011년 3월 전세계를 놀라게 한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본 정부 고위관리들의 잇단 발언이 그랬다.

“사고 직후부터 모니터링 포스트(관측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총리의 사고현장 시찰 때문에 벤트(ventilation의 준말·환기)가 늦어졌다는 추측은 잘못됐다”, “원전 트렌치(trench·배관)에 방사능 오염수가 차고 있다”처럼 하나같이 영어를 섞어 사용했다. 전문용어일수도 있겠지만 생경한 영어 단어들이 당시 국민의 이해를 저해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90년대 말부터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속어 ‘겟토(get)’ 역시 일본 중장년층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영어 get와 같은 뜻으로, “평소 눈 여겨 봐 놨던 신발을 겟토(get)했어”과 같이 쓰인다.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이 2011년 발매한 싱글앨범 ‘후라잉구 겟토(flying get)’도 지금은 ‘만화나 CD, 게임소프트웨어 등의 상품을 발매일 하루 전에 조기 구입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속어로 정착했다. 영미권에서는 통영되지 않는 일본식 영어다. ‘후라게(フラゲ)’라는 준말로도 쓰이는데, 새로운 언어를 둘러싼 세대간의 갈등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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